본문 바로가기

선택과 단념과 집중

열정과 재능을 시간에 담아낸 무게가 우리의 일생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정 수준의 지식을 보유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 시간들에 자신의 삶을 담아낸 것은 아닙니다. 마치 기계공이 엔진을 조립하고도 자동차에 장착하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불완전하게 습득한 지식이 몇 가지 있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과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몇 개 나라의 외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알며, 기초가 습득되어 있지 못한 과학 지식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완전한 습득에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헛되이 사라진 시간들입니다. 배우려는 노력만으로도 정신은 일정 수준의 연마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시간들을 무조건 헛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정신의 연마는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낭비로 몰아가는 시각도 부적절합니다.

그러나 결과물, 즉 습득된 지식과 기술의 편차를 놓고 말한다면 극히 낮은 수준입니다. 이 같은 불완전한 정신노동이 현대사회에서는 꽤나 유용한 활동으로 장려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그 이유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정신노동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특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쁜 현대인들은 깊이는 얕더라도 이것저것 넓게 경험해봄으로써 복잡하게 뒤엉킨 일상에서 한숨 돌리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역설하는 최소한 정신의 연마 내지는 지적 훈련이라는 성과가 남지 않겠느냐는 유혹도 제법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것저것 뒤적인 결과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봅시다. 피아노를 몇 년 배웠습니다. 음계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소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가라앉은 심상을 악보로 구현해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할 만큼 연주할 능력은 안 됩니다. 삶이 거칠어질 때마다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따라가며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것은 아직 요원합니다.

또 외국어를 몇 년 공부했습니다. 기본문법과 수백 개의 단어와 인사법과 발음기호 등을 익혔습니다. 제법 그들의 말을 흉내낼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과학을 몇 년 공부했습니다. 식물학입니다. 식물의 효능과 뿌리가 대지에 손길을 내미는 과정, 생장 등에 관한 전문서적을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숲을 가꾸거나,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내지는 못합니다.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지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관점은 드넓은 평야와 같아서 그 위에는 온갖 동식물들이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곤충도 있고, 독수리도 있으며, 바람에 날려 떠도는 풀씨도 있습니다. 사람이 생활이라는 터전에 관계된 여러 것들에 귀와 눈을 기울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단지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했을 때 나의 특성과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의 역량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최소화시킨다면 대상에 대한 이해의 척도는 보다 깊어질 것입니다. 정신활동의 결과물이 좀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우리 삶에 미치는 정신의 영향력이 더욱 심화될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사리에 정통해지는 것은 다른 사물과 대상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동일한 숙명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분야에 정통해진다는 것은 다른 분야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시간을 철저하게 절약하고 싶다면 지금 몰두하고 있는 일들을 리스트로 작성해보는 건 어떨까요. 각각의 일에 정직하고 불완전한 정도를 기입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일들에 어느 만큼 집중하고 있는지, 앞으로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그 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가 어떤 것인지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지적 활동 중에서 실현 가능한 것, 다시 말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보입니다. 그 분야에 집중하십시오. 나머지 활동은 비록 흥미가 있고 개인적으로 소중하더라도 내려놓습니다. 단념입니다. 단념하는 대신 귀중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단념하지 않고서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결정한 지적 활동 분야에서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한계란 곧 목표입니다.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은가를 바라보지 말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적 활동에는 명확한 한계가 설정되어 있어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지적 활동에 앞서 기초지식의 한계설정을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꽃을 좋아하니까 당장 정원으로 뛰어나가 꽃을 심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나는 꽃을 좋아하니까 우리 집 정원에 꽃을 심기 전에 식물학 표본 등을 공부해 우리 집 정원 토양에 적합한 꽃을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조사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전자의 활동은 육체노동, 혹은 취미생활이며 후자는 지식이 동반되는 지적 생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적의 요새를 완벽하게 점령하지 않은 채 남겨두면 그것은 한심스러운 시간 낭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진 깊숙이 공격해 들어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되돌아옴을 기약하지 말고 정복해야 하는 것들, 정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들은 남김없이 철저히 정복해야 합니다.

이처럼 착실히 전진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적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무턱대고 재촉 받지 않는 제어력이 요구됩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돈이 없다, 나는 학문이 짧다와 같은, 우리를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변명들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이들 외적 압력은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때로는 비참하게도 만듭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뒷걸음치지 않습니다. 인내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자 최선의 기능입니다. 물러서는 대신, 후회하는 대신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서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시간인지, 재능인지,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지 못하는 불신인지 헤아려보십시오. 정답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출처: 책 '지적 생활의 즐거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터  (0) 2022.08.13
윌스미스의 아카데미 시상식 폭행  (0) 2022.08.11
크리스마스  (0) 2022.07.18
Advice, like youth, probably just wasted on the young  (0) 2022.06.24
첫사랑  (0) 2022.06.24